이순신은 흩어진 군사를 모으고 전선을 정비하면서 1척을 추가한 13척으로 승리할 수 있는 지형을 찾아 나섰다. 그때 이순신의 통찰력이 발휘했다. 그가 상상한 곳은 큰 바다, 넓은 공간이 아니었다. 수적 열세로 큰 바다에서는 포위당해 전멸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었다.
고심 끝에 찾아낸 곳이 목이 좁은 명량이었다. 적선이 아무리 많더라도 좁은 목은 한꺼번에 통과할 수 없으니, 대응할 적선의 수가 적어지는 순간 각개격파가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211쪽)
박종평의 ‘진심진력’ 중에서(더퀘스트)
(예병일의 경제노트)
영화 ‘명량’의 시사회를 다녀왔습니다. 지난해 늦가을 아이와 함께 차를 몰고 전국일주를 하면서 이순신 장군의 흔적이 남아 있는 장소들을 찾아갔었습니다. 그래서 이 영화가 만들어진다는 소식을 듣고는 꼭 가서 봐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지요.
영화는 두시간 동안 명량대첩을 보여줬습니다. 이순신 장군이 결전의 장소를 택하기 위해 현장을 둘러보는 장면도 나옵니다. 나중에 추가한 1척을 합해 총 13척의 배로 일본의 전선 133척과 맞서야했던 그는 폭이 좁고 물살이 센 명량해협(울돌목)을 선택합니다. 이런 그의 뛰어난 통찰력은 ‘오자병법’의 구절에서 나왔습니다.
“길이 좁고 험하며 큰 산이 가로막고 있는 곳은 열 명이 지켜도 천 명의 적이 지나가지 못한다.”
“한 명이 목숨을 내던질 각오를 하면 천 명을 두려움에 떨게 만들 수 있다.”
이순신은 이 ‘오자병법’을 바탕으로 명량을 결전지로 택한뒤, 두려움에 떨던 부하들을 이렇게 설득했습니다.
“한 사람이 길목을 지키면 천 명도 두렵게 할 수 있다.” (一夫當逕 足懼千夫. 일부당경 족구천부. 逕은 소로 경입니다.)
박종평 이순신연구가는 이에 대해 기적 같은 승리를 거둔 이순신의 통찰은 끊임없는 관찰과 꾸준한 독서의 결과였다고 평가했더군요.
명량대첩 직전에 이순신 장군이 선조에게 올린 글을 다시 떠올려봅니다.
“신에게는 아직도 전선 12척이 있습니다.
죽을 힘으로 막아 지키면 오히려 해낼 수 있습니다.
만약 지금 수군을 전부 폐지한다면, 일본군은 이를 행운으로 여길 것이며, 충청도를 거쳐 한강까지 올라갈 것입니다.
신이 두려워하는 것은 그것입니다.
비록 전선은 적지만 신이 죽지 않는 한 적이 감히 우리를 무시하지는 못할 것입니다.”
今臣戰船 尙有十二 (금신전선 상유십이)…
명량해협을 택한 통찰력.
’12척밖에 없다’가 아닌 ‘아직도 12척이 있다'(尙有十二)라고 생각한 긍정의 용기.
‘통찰력’과 ‘긍정의 용기’가 있다면 후손인 우리도 ‘길’을 찾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