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지구가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의 수에 한계가 존재한다는 것, 이를 부정하는 건 어리석은 생각이다. 단지 그 수가 70억(현재 전 세계 인구)이냐, 100억이냐, 아니면 280억이냐의 문제다.
나는 이미 그 수를 넘어섰다고 생각한다. 그것도 많이 넘어선 듯하다. 우리는 아직 현재의 상황을 변화시킬 수 있다. 과학기술의 힘으로는 어려울 것이다. 우리의 행동양식을 송두리째 바꿔야 한다. 하지만 그런 노력이 이뤄지고 있다는, 또는 조만간 이뤄질 거라는 징조는 전혀 보이지 않는다.
내 생각에 아마도 우리는 살던 대로 계속 살게 될 것이다. (197쪽)
스티븐 에모트의 ‘100억 명, 어느 날’ 중에서(시공사)
(예병일의 경제노트)
요즘 에볼라 바이러스 때문에 아프리카 국가들이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만, 나이지리아의 인구는 현재 1억 7,000만 명 수준입니다. 유엔에 따르면 이번 세기말 이 숫자는 7억 3,000만 명에 달할 것이라고 합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저출산이 심각한 문제가 되고 있지만, 전세계적으로 보면 분위기는 다릅니다. 아프리카 국가들의 인구증가율이 가파른데, 이는 몇몇 나라들의 문제만이 아닙니다. 미국도 지금의 3억 1,000만 명 수준의 인구가 세기말에는 4억 7,800만 명으로 늘어날 것으로 전망되고 있습니다. 영국 케임브리지에 있는 마이크로소프트 리서치 산하 계산과학연구소 소장인 저자는 만약 전 세계 출생률이 현 수준을 유지한다면 이번 세기말 인구는 100억 명이 아니라 280억 명이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이는 우리가 자초한 지구 초유의 비상사태라고 강조합니다.
우리가 평소에는 잘 생각해보지 않는 문제입니다. 우리의 지구는 몇 명까지 사람을 끌어안을 수 있는가. 현재의 70억인가, 아니면 100억, 280억인가. 당연히 어떤 한계치는 있을테지요. 하지만 우리는 막연히 어떤 혁신이 일어나 지구와 인류에게 해결책을 제시해줄 것이라 기대하며 지내고 있습니다. 과거에도 맬서스 등 인구급증에 의한 멸망론이 제기되었었지만 결과적으로는 오류로 판명되지 않았느냐고 생각하며 말입니다.
하지만 저자인 스티븐 에모트는 비관적이더군요. 태양열 발전, 수력, 생물연료 등을 의미하는 녹색에너지에 대해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현재의 녹색 에너지 기술이 지구를 살릴 해결책이 될 가능성은 매우 희박해 보인다. 그런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현재의 녹색 에너지 기술로 우리가 요구하는 에너지 수요를 감당한다는 것은 상상하기조차 어렵다. 예를 들어, 차세대 실리콘 태양전지(태양열 전지판)을 만들려면 수많은 금속과 희토류를 집중적으로 채굴해야 한다. 그 금속을 채굴하는 과정 자체가 이미 전혀 ‘환경 친화적’이지 않다. 이 금속들 대부분이 무역업계에선 ‘누적된 공급 부족’이라고 알려져 있는 심각한 상황에 처해 있다. 다시 말해, 고갈되어가고 있다는 얘기다. 더군다나 차세대 태양열 전지판을 만드는 데는 삼불화질소가 필요하다. 삼불화질소는 지구 상에서 가장 강력한 온실가스다.”
에모트는 기술 혁신을 통해서 위기를 벗어나는 것이 어렵다면 남은 해결책은 우리(서구 등 서구와 북반구 사람들)의 행동양식을 바꾸는 것뿐이라고 말합니다.
“소비를 줄여야 한다. 그것도 아주 많이 줄여야 한다. 식량도 적게, 에너지도 적게, 상품도 적게 소비해야 한다. 자동차, 전기차, 면 티셔츠, 노트북컴퓨터, 휴대전화도 줄여야 한다. 훨씬 더 조금만 써야 한다. 하지만, 전 세계 소비량은 끊임없이 증가하고 있다.”
1만 년 전. 100만 명.
200년 전인 1800년쯤. 10억 명
50년 전인 1960년쯤. 30억 명.
현재. 70억 명.
2050년쯤. 90억 명.
2100년쯤. 100억 명~280억 명…
평소에도 우리는 이 숫자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혁신’을 위해 노력하는 것뿐만 아니라, 에모트 같은 비관적인 과학자들의 주장도 들어볼 필요가 있지요. 인류가 어떤 방식으로든 ‘해결책’을 찾을 수 있으리라 기대하지만, 분명한 건 몇몇 국가에서 불요불급한 소비가 계속 증가하고 있으며 이것이 물부족 사태 등 심각한 위기상황을 초래할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는 사실입니다.